짧지만 많은 이에게 울림을 준 시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 시엔 심리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죠.
춤추라, 아무도 바라보고 있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노래하라, 아무도 듣고 있지 않은 것처럼.
일하라, 돈이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살라,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 알프레드 디 수자
아무래도 이 시의 핵심은 마지막 문장인
"살라,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일 겁니다.
구체적으로 본다면 각 문장들이
조금씩 다른 메시지를 갖고 있습니다만,
그럼에도 마지막 문장이
이 모든 문장들의 메시지를 함축할 수 있습니다.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사는 이에게
춤, 사랑, 노래, 일.. 그 무엇을 하든
걸릴 것이 없을 테니까요.
하지만 저에게 종종 떠오르는 문장은
마지막 문장이 아닌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입니다.
류시화 시인의 책 제목으로도 유명하지만
심리, 마음의 측면에서도
충분히 의미 있는 메시지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유치원에 가서 '이거 해볼 사람?'이라고 하면
'저요! 저요!'라며 선뜻 나서는 순수한 아이들이 많습니다.
반면 중고등학교만 가도
학생들이 대체로 눈을 피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대중 속에 앉은 채로
궁금한 걸 질문하는 것조차 두려워하기도 하고요.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비교, 좌절, 눈치, 비난, 거절, 수치심 등을 반복 경험하며
그냥 입을 닫고 나서지 않는 걸 학습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험의 반복이 학습된 무기력으로 이어지기도 하고요.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라"는 말과
이런 현상이 연결될 수 있습니다.
조금은 무모할 만큼 거침없이 사랑했던 사람들도,
사랑과 이별을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새로운 사랑을, 사람을 두려워합니다.
사랑이란 감정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언제 또 서로 알아가고 맞춰가냐며
그 과정을 피곤해 합니다.
그 피곤을 이유로 애초에 만남 자체를
피하기도 하고요.
그럴수록 사랑이 꽃 필 기회는 점점 멀어져 갑니다.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이라는 표현에서 "상처"를 주목해 주세요.
사람마다 삶을 통해 가진 많은 상처들이
그 순간 온전히 치유되지 못한 채
깊고 두터운 상처로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계속 신호를 보내는 상처로 자리 잡아
현재를 온전히 살아가지 못하게 합니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가 아닌 왜곡해서 보게 만들고
과거에 붙잡힌 채 새로운 가능성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합니다.
이런 상처들은
"원인론"으로 표현할 수 있는 프로이트와 융의 관점에선
"트라우마"로 작용합니다.
"목적론"으로 표현할 수 있는 아들러의 관점에선
"합리화의 수단"으로 작용합니다.
하와이의 전통적인 문제 해결 방법이 있습니다.
또한 치유 기법이기도 하고요.
그건 바로 "호오포노포노"입니다.
호오포노포노에서는 네 개의 문구를 사용해
"정화"를 합니다.
그 문구는
"미안합니다, 용서하세요,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이 네가지 표현입니다.
그런데 이 문구들로 도대체 뭘 정화한다는 걸까요.
책이나 관련 콘텐츠를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과거의 기억"을 정화한다고 하죠.
호오포노포노는 사람들이 겪는 현재의 문제들을
과거의 기억이 재생되는 것으로 봅니다.
만약 이런 과거의 기억을 정화할 수 있다면,
말 그대로 한번도 사랑하지 않은 것처럼
사랑할 수 있죠.
즉 순수하게 본연의 삶을, 자신의 삶을,
온전히 현재 안에서 살아갈 수 있는 겁니다.
관련 내용을 더 깊게 들어가려면
카르마를 비롯해 역사와 구조에 대해
자세히 탐구해 가야할 게 많습니다.
하지만 굳이 그러지 않더라도
핵심은 직관적으로 알 수 있스빈다.
만약 과거의 상처로 현실을 왜곡하지 않는다면,
과거의 상처로 자신의 가능성을 제한하지 않는다면,
이 상처들을 외면하지 않고 온전히 품을 수 있다면,
그때 자신의 삶이 어떻게 달라질지 말이죠.
그 삶을 그리 멀리 있지 않습니다.
매 순간, 지금 여기에서 가능합니다.
사랑할 때 무엇이 가로막는지 살펴 보세요.
춤을 출 때, 노래할 때, 일할 때, 살아갈 때
매번 내 진실된 목소리를 무엇이 가로막는지 살펴 보세요.
거기에 상처가, 과거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 상처, 기억들에 의해
자기다운 삶을 살지 못하는 나를 비난하지 말고
우선 그 상처, 기억들을 인정하고 허용해 주세요.
그렇게 하나씩 포용해 갈수록
점점 더 자신의 삶을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짧지만 많은 이에게 울림을 준 시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 시엔 심리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죠.
춤추라, 아무도 바라보고 있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노래하라, 아무도 듣고 있지 않은 것처럼.
일하라, 돈이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살라,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 알프레드 디 수자
아무래도 이 시의 핵심은 마지막 문장인
"살라,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일 겁니다.
구체적으로 본다면 각 문장들이
조금씩 다른 메시지를 갖고 있습니다만,
그럼에도 마지막 문장이
이 모든 문장들의 메시지를 함축할 수 있습니다.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사는 이에게
춤, 사랑, 노래, 일.. 그 무엇을 하든
걸릴 것이 없을 테니까요.
하지만 저에게 종종 떠오르는 문장은
마지막 문장이 아닌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입니다.
류시화 시인의 책 제목으로도 유명하지만
심리, 마음의 측면에서도
충분히 의미 있는 메시지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유치원에 가서 '이거 해볼 사람?'이라고 하면
'저요! 저요!'라며 선뜻 나서는 순수한 아이들이 많습니다.
반면 중고등학교만 가도
학생들이 대체로 눈을 피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대중 속에 앉은 채로
궁금한 걸 질문하는 것조차 두려워하기도 하고요.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비교, 좌절, 눈치, 비난, 거절, 수치심 등을 반복 경험하며
그냥 입을 닫고 나서지 않는 걸 학습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험의 반복이 학습된 무기력으로 이어지기도 하고요.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라"는 말과
이런 현상이 연결될 수 있습니다.
조금은 무모할 만큼 거침없이 사랑했던 사람들도,
사랑과 이별을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새로운 사랑을, 사람을 두려워합니다.
사랑이란 감정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언제 또 서로 알아가고 맞춰가냐며
그 과정을 피곤해 합니다.
그 피곤을 이유로 애초에 만남 자체를
피하기도 하고요.
그럴수록 사랑이 꽃 필 기회는 점점 멀어져 갑니다.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이라는 표현에서 "상처"를 주목해 주세요.
사람마다 삶을 통해 가진 많은 상처들이
그 순간 온전히 치유되지 못한 채
깊고 두터운 상처로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계속 신호를 보내는 상처로 자리 잡아
현재를 온전히 살아가지 못하게 합니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가 아닌 왜곡해서 보게 만들고
과거에 붙잡힌 채 새로운 가능성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합니다.
이런 상처들은
"원인론"으로 표현할 수 있는 프로이트와 융의 관점에선
"트라우마"로 작용합니다.
"목적론"으로 표현할 수 있는 아들러의 관점에선
"합리화의 수단"으로 작용합니다.
하와이의 전통적인 문제 해결 방법이 있습니다.
또한 치유 기법이기도 하고요.
그건 바로 "호오포노포노"입니다.
호오포노포노에서는 네 개의 문구를 사용해
"정화"를 합니다.
그 문구는
"미안합니다, 용서하세요,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이 네가지 표현입니다.
그런데 이 문구들로 도대체 뭘 정화한다는 걸까요.
책이나 관련 콘텐츠를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과거의 기억"을 정화한다고 하죠.
호오포노포노는 사람들이 겪는 현재의 문제들을
과거의 기억이 재생되는 것으로 봅니다.
만약 이런 과거의 기억을 정화할 수 있다면,
말 그대로 한번도 사랑하지 않은 것처럼
사랑할 수 있죠.
즉 순수하게 본연의 삶을, 자신의 삶을,
온전히 현재 안에서 살아갈 수 있는 겁니다.
관련 내용을 더 깊게 들어가려면
카르마를 비롯해 역사와 구조에 대해
자세히 탐구해 가야할 게 많습니다.
하지만 굳이 그러지 않더라도
핵심은 직관적으로 알 수 있스빈다.
만약 과거의 상처로 현실을 왜곡하지 않는다면,
과거의 상처로 자신의 가능성을 제한하지 않는다면,
이 상처들을 외면하지 않고 온전히 품을 수 있다면,
그때 자신의 삶이 어떻게 달라질지 말이죠.
그 삶을 그리 멀리 있지 않습니다.
매 순간, 지금 여기에서 가능합니다.
사랑할 때 무엇이 가로막는지 살펴 보세요.
춤을 출 때, 노래할 때, 일할 때, 살아갈 때
매번 내 진실된 목소리를 무엇이 가로막는지 살펴 보세요.
거기에 상처가, 과거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 상처, 기억들에 의해
자기다운 삶을 살지 못하는 나를 비난하지 말고
우선 그 상처, 기억들을 인정하고 허용해 주세요.
그렇게 하나씩 포용해 갈수록
점점 더 자신의 삶을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