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삶을 위해 오늘도 노력하고 계신가요?"
너무 뻔한 질문인지도 모릅니다.
노력하지 않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각자 다른 배경을 간과한 채 노력의 양을 비교해서 그렇지,
모두들 더 나은 삶을 위해 최선을 선택을 내리고자 합니다.
그토록 고민하고 또 고민하며 애를 쓰는 이유죠.
그런데 그토록 노력해도 삶이 여전히 힘들다면,
그건 노력의 문제가 아니라 방식의 문제입니다.
먼 옛날, 한 인간이 있습니다.
대충 '원시인'이라고 할게요.
어느 날 원시인은
저 멀리 무언가 움직이고 있다는 걸 발견합니다.
맹수입니다. 치명적인 맹수죠.
그 맹수가 점점 원시인을 향해 다가옵니다.
원시인의 등에는 서늘한 식은땀이 흐릅니다.
심장은 요동치고 입술은 바짝 마르며 근육은 수축됩니다.
지금 이 순간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목숨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절체절명의 순간이죠.
(어떤가, 이 맹수의 위협적인 자태가)
원시인의 이야기라 다행입니다.
현대인들은 이렇게 맹수를 만나
직접적인 생명의 위협을 느낄 일은 많지 않습니다.
대신 안타까운 사실이 있습니다.
맹수를 만났을 때와 같은 유사한 반응을
매 순간 안고 살아가고 있다는 겁니다.
그게 바로 "만성 스트레스"입니다.
만성 스트레스는
비록 한 순간의 강도는 약할지라도 빈도가 높습니다.
목숨을 위협하는 극도의 스트레스는 아닐지언정
어느새 내 몸과 하나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장기적입니다.
너무 시간이 오래 되어서일까요.
어느새 만성 스트레스에 익숙해지다 못해
삶의 방식이 되어버린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 삶의 방식을 전 간단히
"생존모드(survival mode)"라고 표현합니다.
그리고 여기에 '노력함에도 삶이 불행'한 이유가 있습니다.
생존모드로 살아가는 사람은 항상 긴장합니다.
맹수가 없어도 어딘가 모르게 불안하고 초조합니다.
그러니 쉽게 피곤하고 지치며 몸에 힘이 없죠.
심리학적으론 투쟁-도피 반응,
여기에 얼어붙음(경직)을 더해
3F(Fight-Flight-Freeze)반응을 보입니다.
목숨 걸고 한 판 붙거나(투쟁),
살기 위해 그대로 도망가거나(도피),
잔뜩 겁을 먹고 어찌할 줄 모르거나(얼어붙음)입니다.
그 사람을 지배하는 주된 감정은
당연히 사랑과 평화가 아닌
두려움과 분노입니다.
생리학적으론 자율신경계 불균형 상태입니다.
주로 교감 신경 과다 반응을 나타냅니다.
대근육에 혈액이 쏠리고,
그러기 위해 심박동은 늘어나며
혈관은 수축합니다.
당장 생존에 긴급하지 않은
피부 혈관이나 소화기관 등에는
혈액이 가지 않아 기능이 떨어집니다.
소화도 안되고 입은 바싹 마르고 피부는 약해지죠.
두뇌에서는 스트레스 호르몬이 분비되고,
몸 전체에서는 보유하고 있던
필수 영양소들과 에너지를 빠르게 소모됩니다.
신경계와 연결된 호흡은 얕고 짧아지고요.
당연히 몸과 마음이 불안정합니다.
이런 상태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심리적 방어기제까지
무의식적으로 형성되고 작동합니다.
스스로를 억압하고 회피하며
그런 자신을 합리화합니다.
자신이 자신을 속이고,
나중엔 그 사실조차 잊어
어딘가 찜찜한 상태로 살아가죠.
생존모드의 사람에게
"삶은 곧 투쟁"입니다.
이런 배경 속에서는
그토록 애를 쓰고 노력해도
잠깐의 성취감이 존재할 뿐
삶은 여전히 불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단지 '노력의 부족'이 문제가 아닌겁니다.
(투쟁이 이런 '놀이' 정도라면 다행이겠지만)
생존모드는 많은 현대인의 모습이자,
지난 날의 제 모습이기도 합니다.
제가 생존하기 위해 선택한 전략은
"열심"이었습니다.
평균 주 80~90시간, 때로는 100시간을 일했고,
더 많은 시간을 노력하고자
3~4시간 수면법을 연구하며 잠을 줄였습니다.
사회적으로 성공했다는 사람들을 보며
'어떻게 하면 더 열심히 살 수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뒤늦게 알았습니다.
그건 진짜 '열심'이 아닌 '억지 애씀'이었다는 걸요.
어느 순간 한계를 느낄 수밖에 없는
'맹목적 노력'이었다는 걸요.
왜? 생존모드의 성공은 그저 생존의 연장이지
자유롭고 행복한 삶의 시작이 아니거든요.
투쟁의 다음은 행복이 아니라,
더 거대한 투쟁의 연속이거든요.
투쟁에서 승리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투쟁 자체에서 벗어나는 겁니다.
따라서,
이제 같은 방식으로 더 노력하려 애쓰기에 앞서
지금껏 맹목적으로 해왔던 노력의
방향, 방식, 배경을 되돌아봐야 합니다.
무엇을 위해 애썼고,
어떠한 방식으로 노력했고
나를 그토록 달리게만 한 배경이 무엇인지
질문해야 합니다.
생존을 보장해 준다는 더 강력한 무기를 쫓기 전에
먼저 내 존재 상태, 삶의 방식 자체를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
생존모드 속에서 승리하기보다는
생존모드 자체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서요.
(도구에 앞서 존재의 상태. 노력에 앞서 기본 메커니즘)
지금부터
"플로우라이프(flowlife)"는
애쓰지 않고 자유로운 삶을 누리기 위한
생각과 이야기와 정보를 다룰 것입니다.
생존모드와 대비되는 "창조모드" 속에서
살기 위한 자기계발, 의식성장을 다룰 것입니다.
플로우라이프가,
오늘도 애쓰고 있는 분들이 잠시 멈춰
작은 영감 하나 얻어갈 수 있는,
그런 공간이 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더 나은 삶을 위해 오늘도 노력하고 계신가요?"
너무 뻔한 질문인지도 모릅니다.
노력하지 않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각자 다른 배경을 간과한 채 노력의 양을 비교해서 그렇지,
모두들 더 나은 삶을 위해 최선을 선택을 내리고자 합니다.
그토록 고민하고 또 고민하며 애를 쓰는 이유죠.
그런데 그토록 노력해도 삶이 여전히 힘들다면,
그건 노력의 문제가 아니라 방식의 문제입니다.
먼 옛날, 한 인간이 있습니다.
대충 '원시인'이라고 할게요.
어느 날 원시인은
저 멀리 무언가 움직이고 있다는 걸 발견합니다.
맹수입니다. 치명적인 맹수죠.
그 맹수가 점점 원시인을 향해 다가옵니다.
원시인의 등에는 서늘한 식은땀이 흐릅니다.
심장은 요동치고 입술은 바짝 마르며 근육은 수축됩니다.
지금 이 순간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목숨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절체절명의 순간이죠.
(어떤가, 이 맹수의 위협적인 자태가)
원시인의 이야기라 다행입니다.
현대인들은 이렇게 맹수를 만나
직접적인 생명의 위협을 느낄 일은 많지 않습니다.
대신 안타까운 사실이 있습니다.
맹수를 만났을 때와 같은 유사한 반응을
매 순간 안고 살아가고 있다는 겁니다.
그게 바로 "만성 스트레스"입니다.
만성 스트레스는
비록 한 순간의 강도는 약할지라도 빈도가 높습니다.
목숨을 위협하는 극도의 스트레스는 아닐지언정
어느새 내 몸과 하나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장기적입니다.
너무 시간이 오래 되어서일까요.
어느새 만성 스트레스에 익숙해지다 못해
삶의 방식이 되어버린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 삶의 방식을 전 간단히
"생존모드(survival mode)"라고 표현합니다.
그리고 여기에 '노력함에도 삶이 불행'한 이유가 있습니다.
생존모드로 살아가는 사람은 항상 긴장합니다.
맹수가 없어도 어딘가 모르게 불안하고 초조합니다.
그러니 쉽게 피곤하고 지치며 몸에 힘이 없죠.
심리학적으론 투쟁-도피 반응,
여기에 얼어붙음(경직)을 더해
3F(Fight-Flight-Freeze)반응을 보입니다.
목숨 걸고 한 판 붙거나(투쟁),
살기 위해 그대로 도망가거나(도피),
잔뜩 겁을 먹고 어찌할 줄 모르거나(얼어붙음)입니다.
그 사람을 지배하는 주된 감정은
당연히 사랑과 평화가 아닌
두려움과 분노입니다.
생리학적으론 자율신경계 불균형 상태입니다.
주로 교감 신경 과다 반응을 나타냅니다.
대근육에 혈액이 쏠리고,
그러기 위해 심박동은 늘어나며
혈관은 수축합니다.
당장 생존에 긴급하지 않은
피부 혈관이나 소화기관 등에는
혈액이 가지 않아 기능이 떨어집니다.
소화도 안되고 입은 바싹 마르고 피부는 약해지죠.
두뇌에서는 스트레스 호르몬이 분비되고,
몸 전체에서는 보유하고 있던
필수 영양소들과 에너지를 빠르게 소모됩니다.
신경계와 연결된 호흡은 얕고 짧아지고요.
당연히 몸과 마음이 불안정합니다.
이런 상태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심리적 방어기제까지
무의식적으로 형성되고 작동합니다.
스스로를 억압하고 회피하며
그런 자신을 합리화합니다.
자신이 자신을 속이고,
나중엔 그 사실조차 잊어
어딘가 찜찜한 상태로 살아가죠.
생존모드의 사람에게
"삶은 곧 투쟁"입니다.
이런 배경 속에서는
그토록 애를 쓰고 노력해도
잠깐의 성취감이 존재할 뿐
삶은 여전히 불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단지 '노력의 부족'이 문제가 아닌겁니다.
(투쟁이 이런 '놀이' 정도라면 다행이겠지만)
생존모드는 많은 현대인의 모습이자,
지난 날의 제 모습이기도 합니다.
제가 생존하기 위해 선택한 전략은
"열심"이었습니다.
평균 주 80~90시간, 때로는 100시간을 일했고,
더 많은 시간을 노력하고자
3~4시간 수면법을 연구하며 잠을 줄였습니다.
사회적으로 성공했다는 사람들을 보며
'어떻게 하면 더 열심히 살 수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뒤늦게 알았습니다.
그건 진짜 '열심'이 아닌 '억지 애씀'이었다는 걸요.
어느 순간 한계를 느낄 수밖에 없는
'맹목적 노력'이었다는 걸요.
왜? 생존모드의 성공은 그저 생존의 연장이지
자유롭고 행복한 삶의 시작이 아니거든요.
투쟁의 다음은 행복이 아니라,
더 거대한 투쟁의 연속이거든요.
투쟁에서 승리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투쟁 자체에서 벗어나는 겁니다.
따라서,
이제 같은 방식으로 더 노력하려 애쓰기에 앞서
지금껏 맹목적으로 해왔던 노력의
방향, 방식, 배경을 되돌아봐야 합니다.
무엇을 위해 애썼고,
어떠한 방식으로 노력했고
나를 그토록 달리게만 한 배경이 무엇인지
질문해야 합니다.
생존을 보장해 준다는 더 강력한 무기를 쫓기 전에
먼저 내 존재 상태, 삶의 방식 자체를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
생존모드 속에서 승리하기보다는
생존모드 자체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서요.
(도구에 앞서 존재의 상태. 노력에 앞서 기본 메커니즘)
지금부터
"플로우라이프(flowlife)"는
애쓰지 않고 자유로운 삶을 누리기 위한
생각과 이야기와 정보를 다룰 것입니다.
생존모드와 대비되는 "창조모드" 속에서
살기 위한 자기계발, 의식성장을 다룰 것입니다.
플로우라이프가,
오늘도 애쓰고 있는 분들이 잠시 멈춰
작은 영감 하나 얻어갈 수 있는,
그런 공간이 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